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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칼라

think75946 2026. 1. 9. 10:49

 

변화하는 노동의 중심, 새로운 균형점

우리는 종종 직업을 색으로 기억한다. 파란 작업복, 하얀 셔츠, 검은 정장 등 직업과 색은 역사 속에서 끊임 없이 맞물려 왔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사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 기술의 발전, 산업 구조의 변화를 동시에 반영하는 코드였다. 한 장의 사진을 떠올려 보자. 20세기 초, 연기 나는 공장 안에서 파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가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같은 시기, 하얀 셔츠를 입은 사무직 직원이 책상 위 서류와 전산 기록을 정리한다. 색깔은 단순한 옷감의 선택을 넘어, 노동의 가치와 역할을 눈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언어였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노동을 색으로 구분해왔을까?


첫째, 실용성이다. 블루칼라의 파란 작업복은 오염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내구성이 뛰어났다. 대량 생산 시대, 값싸게 제작 가능한 천의 색상이기도 했다. 둘째, 상징성이다. 색은 곧 정체성을 의미했고, 각 산업과 직군의 전문성과 역할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오늘날, 산업과 기술의 변화로 노동의 색깔은 더 이상 단순히 ‘파랑’과 ‘하양’으로 나뉘지 않는다. 현장과 사무, 기술과 관리, 손과 머리가 서로 겹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등장하면서 색깔도 섞이기 시작했다.

 

칼라의 시작, 산업화를 움직인 블루칼라

직업의 색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은 단연 블루(Blue)다. 20세기 산업화의 심장에는 기계를 돌리고, 생산라인을 유지하고, 도시를 세운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작업복이 파란색이었던 이유는 실용성과 상징이 모두 들어 있었다. 오염이 덜 보이고 내구성이 좋은 색이기도 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천의 색상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손으로 움직이는 노동”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블루칼라는 힘으로 일하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숙련된 기술자였고, 생산의 흐름을 가장 잘 이해하는 현장의 전문가였다. 자동차 공장에서부터 조선소, 항만, 공장, 철도에 이르기까지 산업혁명의 바퀴를 돌린 것은 언제나 파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었다. 블루칼라는 시대에 따라 진화했다 과거의 블루칼라는 단순 육체 노동자라는 고정된 틀로 설명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역할은 훨씬 넓어졌다. 더 정교한 작업을 하는 용접사나 자동화된 설비를 조작하거나 수리하는 등 오늘의 블루칼라는 더 정교한 기술, 더 높은 책임, 더 넓은 전문성을 가진다. 기계는 자동화되었지만, 그 자동화를 유지·점검하고 고도화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즉, 블루칼라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현장 기반의 기술 노동’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되었다.

 

칼라의 변천사, 지식과 관리를 맡은 화이트칼라

반면, 20세기 후반 성장기를 지배한 색은 화이트(White)였다. 데이터, 금융, 행정, 연구, 기획이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하얀 셔츠는 사무·전문직의 상징이 되었다. 화이트칼라는 블루칼라와 대비되는 존재가 아니라 산업 운영을 함께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이었다. 생산을 설계하고 시장을 분석하며, 기술을 연구하고 경제를 운영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블루가 산업을 만드는 손이었다면, 화이트는 산업을 설계하는 머리였다. 그러나 이제, 색은 더 이상 둘만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 산업은 더 이상 현장과 사무, 기술과 관리, 노동과 지식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무직이 현장 데이터를 읽고, 현장직이 AI 시스템을 운영하며, 기술자가 고객 경험을 분석하고 서비스 인력이 로봇과 함께 일한다. 직업의 색깔은 다시 변화하고 있다.

 

 

APEC이 본 브라운칼라와 사람 중심 성장

경주 APEC 2025의 공식 테마는 “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해)”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APEC은 세 가지 핵심 가치를 제시했다. 바로 연결(Connect), 혁신(Innovate), 번영(Prosper) 이다. 이는 브라운칼라의 가치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연결(Connect) – 인간과 기술, 현장과 사무를 잇는 가교

브라운칼라는 현장과 사무, 기계와 인간, 기술과 감성 사이를 연결한다. 그들은 디지털 전환의 언어를 실제 작업 언어로 번역하며, 기계가 읽지 못하는 현장의 맥락을 감지한다. 선언문에서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량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technologies should enhance human capacity, not replace it)”고 명시했다. 브라운칼라는 이 ‘역량 확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AI 시대의 인간 인터페이스가 된다.

 

혁신(Innovate) – 현장에서 탄생하는 실질적 변화

혁신은 연구소가 아니라 현장에서 태어난다. 브라운칼라는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기반으로 공정 효율을 개선하고, 스마트 시스템의 오류를 현장에서 즉시 해결한다. 그들의 작은 개선이 산업 전체의 생산성 혁신으로 이어진다.

 

번영(Prosper) – 포용적 성장과 사회적 가치

연결과 혁신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은 포용적 번영이다. 브라운칼라의 성장은 고용의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전문기술을 갖춘 중간 숙련직의 가치를 확대한다. 돌봄, 물류, 서비스, 스마트 제조 등에서 브라운칼라는 단순 지원자가 아닌 산업 생태계의 핵심 운영자이자 조정자로 활동한다.

 

즉, 브라운칼라는 단순히 새로운 직군을 넘어 APEC이 강조한 사람 중심 성장 전략의 현장 구현자인 셈이다. 기술과 정책, 경험과 실행을 이어주는 브라운칼라의 활동이 바로 AI와 디지털 전환 시대에 인간 중심 번영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이 된다.

 


 

 

색이 아니라 연결의 시대

화이트칼라가 지식의 상징이었다면, 블루칼라는 노동의 상징이었다. 이제 브라운칼라는 ‘연결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들의 일터는 공장과 사무실 사이를 오가고 있고, 그들의 기술은 인간의 손과 기계의 두뇌를 잇는다. 이 새로운 노동의 형태는 AI 시대 속에서 인간의 손길로 작동한다. 결국, 브라운칼라의 부상은 산업의 진화이자 노동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중요한 점은, 브라운칼라가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보다 더 우수하거나 더 중요한 직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나타난 새로운 역할과 협업의 형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2025년 경주 APEC이 말한 사람 중심의 번영은 결국 이러한 브라운칼라형 인재들이 현장에서 만들어갈 미래의 또 다른 이름이 될 것이다.

 

사진 _ Issaline사, Bisley Workwear사, Blaklader사, Pixabay, gettyimage
참고자료 _ APEC 2025 정상회의 공동선언문 (2025, 경주)
APEC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ape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