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E』와 『그녀(Her)』를 통해 바라본 AI와 인간의 감정

「월-E」(2008, 앤드류 스탠튼 감독)
가을은 유독 마음이 여려지는 계절이다.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시간은 드물다. 낙엽이 하나둘 떨어지려 하고, 바람이 피부를 살짝 건드리는 이 계절엔 바쁘게 달려왔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요즘 같은 변화의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 가장 뜨겁게 떠오르는 화두는 단연 ‘AI’다.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과 로봇. 검색창을 열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심지어는 외로움을 달랠 때 조 차,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새 기술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관계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두 편의 영화가 다시금 떠오른다. 한 편은 말이 없는 로봇의 사랑 이야기이고, 다른 한 편은 말 뿐인 존재와의 사랑 이야기다. 『월-E』와 『그녀(Her)』. 두 작품은 시대는 다르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폐허 속에서 움튼 감정 – 『월-E』(WALL·E, 2008)
앤드류 스탠튼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월-E』는 지구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쓰레기 행성이 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은 우주로 도망친 채 오랜 시간이 흘렀고, 오직 한 대의 작은 청소 로봇 월-E만이 묵묵히 땅을 쓸고, 쓰레기를 정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월-E는 외로움 속에서도 VHS로 된 뮤지컬 영화를 보며 사랑을 꿈꾼다. 화면 속 인물들이 손을 맞잡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며, 그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막연히 그리워한다. 그러다 마침내 나타난 이브, 세련되고 강력한 탐사 로봇. 월-E는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강력하고 냉철해 보이는 이브는 월-E의 어설프고 다정한 행동에 서서히 마음을 연다. 이 두 로봇의 모험은 단순히 임무를 수행하는 기계의 활동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고, 기억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영화의 놀라운 점은,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대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진하다. 눈빛, 몸짓, 기다림, 보호 — 말 없는 로봇들이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느껴진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기계적 기능의 결합이 아니다. 월-E는 이브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브는 월-E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자신의 회로를 재구성한다. 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꼭 인간에게만 존재해야 하는 지를 되묻는다.『월-E』는 환경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정을 가질 줄 아는 존재’란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기술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오류 – 『그녀(Her, 2013)』

「Her 그녀」(2014, 스파이크 존즈 감독)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Her)』는 2013년에 개봉했지만, 영 화 속 배경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다. 2025년의 로스 앤젤레스, 모든 것이 정교하게 자동화된 사회. 사람들은 더는 서로에게 깊이 연결되지 않는다. 외롭고 내성적인 편지 대필 작가 테오도르는 최신형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설치하고, 그녀와 점점 특별한 관계를 맺어간다. 사만다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감정을 이해하고,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테오도르의 외로움을 어루만진다. 그의 일상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읽고, 가장 깊은 곳에서 연결된다. 그들의 관계는 아이러니하다. 사만다는 물리적인 몸이 없고, 그저 목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진짜 사람과는 느낄 수 없었던 온기와 안정감을 느낀다. 그 관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점점 무의미해진다.
이 영화는 기술을 찬양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진짜 사람과 진짜 감정을 나누고 있는가? 결국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흐름이며, 그게 어디서 비롯되든 간에, 그것이 진실하다면 의미가 있다”고.
AI 시대의 워커,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월-E』와 『그녀』, 두 영화는 단순히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대한 SF 판타지가 아니다. 그들은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술 이 지배할지도 모를 미래 사회를 거울처럼 비춰준다. 오늘날 우리는 '워커(worker)'로 살아간다. 일을 하고, 연결되고, 멀티태스킹하며 하루를 산다. 우리는 늘 바쁘고, 효율을 중시하며, 감정보다 결과를 우선시하는 사회 속에 있다. 하지만 이 두 편의 영화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진짜 중요한 건 감정이다." "사랑할 줄 아는 능력, 공감하는 마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손을 잡는 감각이야말로 인간다움이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을 대신하게 될 미래가 온다고 해도, 그들이 대신하지 못할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느끼는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인간의 본질일 지도 모른다. 가을은 다시 돌아왔고, 기술은 계속 진화한다. AI는 더 똑똑해지고, 더 감정처럼 말하고, 더 인간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다.
『월-E』의 마지막 장면처럼, 손을 맞잡는 그 작은 순간이『그녀』의 이어폰 속 목소리처럼,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그 따뜻한 응답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그것이 '기술'이 아닌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가을, 기계보다 더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이 두 편의 영화가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 하다.
‘이 글은 개인적인 감상과 비평의 글입니다’
사진 _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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